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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발서적] 책은 도끼다 내용 정리 및 독서 후기

망나니개발자 2024. 2.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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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은 도끼다 내용 정리 및 독서 후기


[ 내용 정리 ]

p7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나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p16

저는 여느 독서가들과 비교했을 때 독서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 매번 읽은 책들을 메모해놓는데, 통계를 내보면 일 년에 읽는 책이 서른 권에서 마흔 권 사이입니다. 한 달에 세 권 정도 읽는 건데 독서량이 많은 건 절대 아니죠. 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

 

 

 

p20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 <이쁘기만 한데 …> 전문


잡초라고들 하는데 관점을 벼로 놓았기 때문에 잡이 된 겁니다. 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p21

가느다란 가지 끝에 열일곱 개의 작은 머루송이가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가 겨우 요거 달았냐 묻습니다. 머루송이가 뭐라고 답했을까요?

최선이었어요

 

그렇죠. 우리는 적은 머루송이를 보고, 요만큼밖에 못 달았느냐 혀 차는 소리를 하는데 머루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는데 인간의 관점으로 적다고 말해 미안하다고 하는 거죠.

 

 

 

p22

꽃 보내고 보니,
놓고 가신
작은 선물

향기로운 열매

 

이렇게 뜻밖의 시선에 놀라고 나면 그 다음부터 저도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습니다. 열매, 그냥 보아 넘기지 않죠. 아, 이 자리에 꽃이 있었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p25

이런 시선, 관점의 변화 같은 것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훈련됩니다. 인간 중심의 시선을 밖으로, 주변으로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p28

성이 난 채 길을 가다가, 작은 풀잎들이 추위 속에서
기꺼이 바람맞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두고 마음 풀었습니다.

 

화가 나서 걸어가고 있는데 아주 추운 날 작은 풀잎들이 바람 맞으면서 견디고 있는 걸 본겁니다. 그 풀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추위와 바람이 얼마나 야속하겠어요. 그런데 화를 안 내잖아요. 그냥 견디잖아요. 그걸 보고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화를 내서 뭘 하겠어’ 생각을 했다는거죠. 이게 좋아요. 이런 것들이 좋아요. 저도 요즘 인터뷰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냥 “견딘다”라고 답합니다. 어쩌겠어요. 사람들은 갈수록 이기적이 되어가는데 이런 글을 통해서 동식물에게 배우는거죠.

 

 

 

p30

삶은 실수할 때마다 패를 하나씩 빼앗기는 놀이다.

 

삶에서 실수는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줄여야 하죠. 왜냐하면 하나의 실수로 인해 하나의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의 말대로 “지금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결과”라는 건데요. 돌아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했던 어떤 행동이 오 년 후의 나와 다 연결이 되거든요. 인생에 정말 공짜란 없습니다.

 

 

 

p32

몸은 길을 안다.

 

이 짧은 문장 속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만큼의 다이어트가 없다고 해요. 어려서 채소 안 먹다가 나이 들어 나물 좋아하게 되는 게 몸이 요구하기 때문이죠. 그런 측면에서 몸은 길을 안다는 거예요.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요. “육체와 사는 동안 난 육체에 집중하겠다. 영혼에 집중하는 건 육체와 헤어진 다음에도 할 수 있다.” 인간들이 실존과 실제를 무시하고 영혼과 사상만 중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한 말인데 다시 한번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p37

피카소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건 힘들지 않았지만, 다시 어린 아이가 되는 데 사십 년이 걸렸다고요. 우리는 0세에서 100세를 놓고 봤을 때,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가면서 지식이 계속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식을 얻는 대신 가능성을 내주는 것이죠. 지식을 쌓으면서 놓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을 우리는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p43

시이불견 청이불문,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죠. <모나리자> 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 된 거고요,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에 얼어붙은 건 견문을 한 거죠.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존 러스킨은 “당신이 보고 난 것을 말로 다 표현해보라”라고 했습니다. 나뭇잎을 봤다면, 나뭇잎의 균형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고, 앞뒷면의 촉감이 어떻게 다르고, 끝부분은 어떤 모양이고, 햇살이 떨어진 각도에 따라 나뭇잎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볼 줄 알면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p44

사과가 떨어져있는 걸 처음 본 최초의 사람이 뉴튼이 아니잖아요. 사과는 늘 떨어져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겁니다. 상황에 대한 다른 시선, 절박함이 사과를 보고 이론을 정리하게 했죠.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p51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 합니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들은 돈이 있건 없건 상관 없어요. 그 친구들은 나뭇잎 하나에도 감탄하고 음악 하나 들으면서 정말 좋다는 걸 알아요. 그런 친구들이 일도 잘하고 인생이 풍요롭죠. 이런 친구들을 벤치마킹해보자는 게 이 수업의 마지막 목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p65

이 글 속에서 김훈은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속도의 문제에 대해 걸고넘어집니다. 우리는 정말 빠른 속도로 살아가요. 꽃 피고 지는 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이죠. 미국의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미국의 전 국토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망이 생긴 덕분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요. 횡단은 하지만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목적지까지 빠르게 갈 수는 있어도, 그동안 관찰은 이루어지지 않죠. 독서를 예로 들면,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적이 있어서 읽기는 하지만 세밀하게 읽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저도 별다르지 않은 현대인이다보니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잘 관찰하지 못하지만, 천천히 보고 싶다는 갈증을 늘 가지고 삽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걷는 속도로 봐야 보이는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p75

다시 한번 말하지만 책을 왜 읽느냐, 읽고 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볼 수 있는게 많아지고,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그전에는 산수유를 보고도 뭐 저렇게 특징없는 꽃이 다 있어 했는데 이제는 나무가 꾸는 아련한 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p90

저는 자주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는 말을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수박이라는 게 없어서 어느 날 수박이라는 걸 처음 수입해 나눠줬다고 칩시다. 생전 처음 수박이라는 걸 본거죠. 그럼 김훈이 보듯이 볼 겁니다. 동그란 녹색에 검은 줄은 뭐지? 그 속의 빨간색은? 그 씨앗은? 달콤한 맛은? 이렇게 되는 거죠. 결핍의 결핍, 너무 낯이 익어서 볼 수 없는 겁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조르바를 통해 “그에게 두려웠던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었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하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p91

항해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박의 위치 판단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 문장에 정말 많이 공감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제가 일하면서 일상에서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 많이 떠올리는 구절입니다. 저에게는 일종의 경종이 되는 문장이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걸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때문에 나에 대한 파악을 하기 전에 내가 갈 곳만 보려고 하죠. 혹시 그래서 실수하지 않을까 나를 먼저 분석하려고 합니다.

 

 

 

p93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많은 기자들이 의견을 사실인 것처럼 전달합니다. 가령 이런 거죠.

민족 최대의 명절 설, 헤어지기 싫은 어머니의 마음을 가득 안은 기차는 다시 서울로 향합니다.

 

이 문장은 100퍼센트 사실만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 그대로 전하자면 설 명절이 끝나서 사람들을 태운 기차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헤어지기 싫은 어머니의 마음을 가득 안은’이라는 주관적인 감상을 덧붙이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는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p103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사랑에 빠지나요? 아마 본인이 보기에 매력적인 사람한테 빠지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상대는 나를 좋하지 않고, 꼭 관심이 없는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좋아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아주 쿨하고 태연해질 수 있어요.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까. 그런데 상대는 그런 모습을 멋지게 보는 거죠. 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이 들어가서 얼굴도 빨개지고 목소리도 떨리고 말도 더듬게 돼요.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실수를 더 하게 되잖아요. 결국 애정이 없는 사람에겐 본의 아니게 나의 전 존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꾸 감추려고 하게 됩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해요.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유혹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벌써부터 말이 꼬이고, 물을 쏟을 거예요. 사랑게임에는 태연함이 요구되는데, 이 게임에서 진지한 욕망이 장애가 되는 겁니다.

 

 

 

p104

다기 사랑 이야기로 돌아가면, 알랭 드 보통은 사렝에 빠지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나는 상대에게 누구인가’가 더 중요해진다는 이야기죠.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겁니다. 사실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와 관계없이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높은 사람을 만나면 벌벌 떨고, 아랫사람을 만나면 오만해지는 자아는 진정한 자아가 아니죠. 내 자아가 진정으로 있다면 내가 이 사람을 만나든 저 사람을 만나든, 사장을 만나든 직원을 만나든 다 ‘똑같은 나’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는 이게 잘 안됩니다.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내가 아닌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저 사람이 좋아해줄까가 중요해집니다. 관점이 모두 상대로 돌아서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저사람이 좋아해줄까가 중요해집니다. 관점이 모두 상대로 돌아서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연인들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서지 않는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합니다.

 

 

 

p115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

 

 

 

p120

요즘 시대에는 필요 이상의 것울 먹고 누리면서 아주 풍요롭게 살고 있어요. 인류의 어떤 시기와 비교하더라도 가장 풍요롭죠. 그런데 우리가 과연 풍요롭게 살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봐요. 그 이유는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풍요는 상대적이라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사는데 저쪽은 저렇게 사네 하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그 내용을 보시면,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가기까지 했다.

 

 

 

p122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결국 감수성과 감성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다시 책들을 읽으면서 최근에 제가 행불행에 대해 한 문장으로 정리하게 됐는데,

행불행은 조건이 아니다, 선택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받은 감동과 여러 느낌들을 정리해보니 행불행이 이렇게 정리되더군요. 나는 불행해, 나는 행복해,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똑같은 현상을 두고 내가 행복을 선택할 것이냐, 불행을 선택할 것이냐라는 것이죠. 돈이 많아야 하고, 어디에 살아야 하고, 어디에 가야 하는 그런 건 아니라는 겁니다. 다 가졌다고 행복할까요? 우리는 행불행을 조건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세의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난 행복을 선택하겠어’ 하면 됩니다. 행복은 운명이 아니니까요. 행복을 대하는 자세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어떤 조건이 만들어줄 수는 없는 것이죠.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밤의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는 삶, 그것을 행복하게 대하는 삶의 자세야말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요?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네요.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니까,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려다보니 결핍이 생기는 겁니다. 하지만 행복은 발견의 대상이에요. 주변에 널려있는 행복을 발견하면 되는 겁니다.

 

 

 

p126

우리의 정신은 의식 위에 떠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포착하게끔 회로에 설정된 레이더와 같아서, 책을 읽고 나면 그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레이더에 걸린다는 겁니다. 회로가 재설정되는 거죠.

 

 

 

p128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감수성이 다 얼어붙어 있을 때 책이 그것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는 건데, 제 겅유로 말하자면 김훈의 책이 나의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된 거죠.

 

 

 

p135

그는 대화의 소재를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찾았다. (…) 그는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대신에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이 부분은 제가 삶의 태도로 가져가고 싶은 부분이라서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딸이나 후배들과 함께할 때 될수 있으면 상대가 주제를 정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야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p137

제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목표로 삼는 건 온몸이 촉수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책을 읽고 나면 촉수가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혹은 없던 촉수가 생겨나는 느낌인데요. 세상의 흐름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내 인생을 온전하게 살고 싶어요. 오늘의 날씨, 해가 뜨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사람과의 만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해요.

 

 

 

p152

무슨 까닭에서인지도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분리되어 나와서 나를 엄습했다. 그것은 마치 사랑이 그렇게 하듯, 인생의 우여곡절들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삶의 재난들을 무해하게 하고 그 덧없음을 착각인 것처럼 만들어주면서 내 속을 귀중한 실체로 가득 채워주었다.

 

이 책에 인용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다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예비하면서 살지는 않아요. 지중해 햇빛을 보고 있자면 더 그래요. 아름다운 여인, 우여곡절 없이 이뤄지는 사랑, 재난 없는 삶 다 줗아요. 현재가 기뻐요. 그러다 문득 이게 다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슬퍼지죠. 그런데 또다시 무슨 까닭인지 모를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그 슬픔으로부터 분리시켜요. 부조리한 순간입니다. 축복을 즐겨야 하는데 고통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죽음이 떠오르고 그러면서도 삶의 희열을 느끼는. 그러니까 방법은 하나, 순간순간을 온전히 씹어먹는 것뿐이에요. 지중해에서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고 우리는 결국 죽을 것이니 계속 슬퍼하는 비극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p155

총망중의 도시 속으로도 문득 봄은 오고, 빈틈없는 시간표 사이로도 문득 구멍이 뚫리면 때로 창분이 보인다. 꿈의 창문이 열린다.

 

저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주 바쁘게 삽니다. 일하고 싸우고 설득하고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가고,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잠깐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바쁜 중에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창밖 올림픽대로 위의 겨울 나뭇가지에 감탄하죠. 나무 너머 강이 걸어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꿈의 창문을 여는 겁니다. 여의도에서 전쟁 한판 벌이고 오는 길에 잠시 수묵화가 펼치지고 계절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이 꿈의 창문을 열지 못하고 찬란한 순간들을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p158

김화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배운다고 합니다. 여행에서 잠깐의 순간들, 헤어지면 영원히 못 볼 사람들과의 악수, 그 도시를 떠나면 다시는 못 만날 풍경, 장담컨대 다시는 볼 수 없는 바닷물빛, 여행지를 다녀올 때의 싸한 느낌이 우리 삶의 마지막을 연상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행지에서 그렇게 만났다가 그렇게 떠나보낸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일생이 한갓 여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행길에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한다.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여행 다니면서 사람들과 헤어질 때 드는 아스라한 느낌이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도시, 내가 잠시 며칠 기거했던 민박집 주인에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할 때의 기분 말입니다. 다시 못 볼 걸 알면서 헤어지는, 죽음의 예행연습 같은 것. 삶은 이별 연습이에요.

 

 

 

p163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서울을 향해 사는 것과는 다르게, 엑상프로방스 사람들은 오히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을 동정합니다. 자연의 축복을 느끼지 못하고 바쁘게만 사는 안쓰러운 사람들, 그게 파리지앵을 보는 그들의 시선입니다. 전형적인 지중해적 사고 방식이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땅에 살고 있는, 현재가 행복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p164

이를 테면 어느 단체에서 제게 강의를 의뢰하면서 강의 제목을 정해서 알려달라고 하길래, “개처럼 살자”라고 보내줬습니다. “개는 밥 먹을 때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잘 때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가 제목에 대한 설명이었어요. 개야말로 지금 순간을 살고 있고, 개처럼 살면 현재를 온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게 제가 정의하는 지중해성 철학입니다. “현재에 집중하자, 순간을 살아라”가 그들 철학의 핵심이죠.

 

 

 

p169

같은 맥락으로 톨스토이 인터뷰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대학시절에 읽고 나서 강의할 때 자주 언급하곤 하는데요. 기자가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 가장 중요한 사람을 얘기해주세요”라고 톨스토이에게 묻자 그가 답하길,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인터뷰입니다”라고 했답니다.

 

 

 

p176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이걸 깨달아야 해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p202

잘나가던 의사 토마스가 테레사라는 여자를 만나 시골 정비사로 살아가게 되는, 연민으로 시작된 숭고한 사랑 이야기이죠. 토마스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연민의 대상이었던 테레사의 위치로 자기 자신을 끌어내렸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며 상대를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테레사를 위해 자신이 아래로 내려갔어요. 이야기 끝에 이르면 테레사는 그런 토마스에게 미안해하고 그를 안아주는데요. 결국 그 포옹이 마지막 춤이 되고, 두 사람은 함께 눈을 감습니다. 사랑을 믿지 않는 또 다른 여자 주인공인 사비나도 부러워했던 사랑입니다.

 

 

 

p208

이처럼 사람들은 역사라는 책의 앞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미 책의 끝부분까지 다 읽은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연극의 결말은 알 수 있습니다. 반복되니까요. 하지만 역사의 결말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반복되지 않으니까요. 사실 끝은 모르는 일이죠. 그러니까 영원히 회귀되지 않는 일회적인 것은 무게를 가질 수 없어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이니까요.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검증되지 않은 일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무게를 실을 수 없습니다.

 

 

 

p240

보이는 거짓과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은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키치”라는 단어와 맞물려 있습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주장”을 위해 “편집”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모을 수 있으니까요. 키치적이에요. 모든 투쟁, 슬로건 또한 키치적이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정치 선동자의 특징은 “그래야만 한다”를 흔들림 없이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흔들리는 사람은 선동가가 될 수 없어요. 내가 지금 이 일을 해야만 우리 민족의 미래가 밝아질 거라는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되죠. 그래서 저는 키치는 편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대로, 보고 싶은 대로 잘라서 편집하는 게 바로 키치가 아닐까 싶어요.

 

 

 

p248

카레닌에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도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진심으로 이에 즐거워했다.

 

개들을 보면 정말 그렇지 않나요? “어머나, 또 아침이네! 일어났더니 또 밥을 주네! 피곤한데 자야지! 앗! 또 아침이잖아! 우와, 그리고 또 밥을 줘!”의 연속이지만 한 번도 지겨워하지 않아요. 카레닌에 대한 이 묘사는 첫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행복은 영원회귀에서 온다는 겁니다. 우리는 직선의 세계를 사는데, 동물은 원형의 세계를 살고 있어요. 개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게 간다는 점을 말하고 있죠.

 

 

 

p257

“안나 카레리나”는 전인미답의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읽으면 특히 좋은 책입니다. 그들이 살면서 겪을 사고의 혼돈, 인생의 질곡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p260

안나의 자살은 충동적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음식 메뉴를 두고도 한참 고민하는 게 인간인데, 하물며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일은 얼마나 갈등이 심하겠어요. 생각은 있지만 실행하기는 힘든 일이죠. 그러니까 하나 둘 셋, 마음을 준비한 다음 실행하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뛰어내리는 겁니다. 모든 자살은 충동적이에요. 다만 개연성은 있어요. 미시적 우연이지만 거시적 필연입니다. 미시적으로는 충동적인 것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늘 자살에 대해 생각했던 겁니다.

 

 

 

p262

그럼 이제 주인공 안나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안나의 감수성이 유난히 예민하거나 지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쉬운 단어로 정리한다면 “바람기”가 있는 여자가 아닐까 싶어요. 다만 이 바람기라는 건 나쁜 의미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도 있는, 누구에게나 있는 경향입니다. 다시 말해, 안나에게 유난히 바람기가 많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는 만큼의 바람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남녀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있어요. 바람기는 다른 말로 “다른 생에 대한 동경”이거든요. 다른 곳에 더 나은 인생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동경이죠.

 

 

 

p264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이에요. 그렇지 않은 인생은 없어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어떤 상황에 처음 놓였을 때 내 감정이 어떤지 정확히는 몰라요. 이게 사랑인가? 질투인가? 미움인가? 정의인가?

 

 

 

p267

이 짧은 시선으로 브론스키는 재빨리 그녀의 얼굴 가운데서 노닐기도 하고 반짝이는 두 눈과 살포시 짓는 미소로 실그러진 붉은 입술 사이를 팔딱팔딱 뛰어 돌아나니기도 하는 짓눌린 생기를 알아챘다.

 

그런데 “짓눌린 생기”라는게 뭘까요? 결혼했으면 다른 남자와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 때문에 짓눌린 생기라는 거에요.

결혼 후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우리 남편 정말 좋아”라고 말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요. 남편 또한 “내 수준에 어울리는 여자야”라고 생각하고 가정을 꾸리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가능성의 불길이 꺼졌느냐? 안꺼졌어요. 아니 그건 꺼지지 않아요. 숨기고 사는 것뿐이에요.

이게 짓눌린 생기라는 거에요. 이것은 그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봐요. 이 사람도 좋지만 저 사람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요.

 

 

 

p273

나는 솔직히 챙이 짧은 모자를 쓰고 싶은데 사람들이 다 챙이긴 모자를 쓰고 있으면 따라가요. 자기 중심이 잡힌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렇죠. 사상도 똑같아요.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여기에 대한 비웃임이 꽤 많은데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있잖아요. 진짜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멋있으니까 얘기하는 사람들이요. 자신의 실체를 실체화한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따라 유행하는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죠. 가장 멋져 보이는 것만 고르는 겁니다.

 

 

 

p278

그녀는 어느 틈에 얼른 브론스키를 쳐다보고 나서 레빈을 돌아봤다. 무의식중에 빛났던 그녀의 시선 하나로 레빈은 그녀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기라도 한 것처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눈빛 하나도 숨기지 못하는, 그게 우리들이에요. 사랑은 이래서 무서워요. 속일 수 없죠. 모든 것을 안 레빈은 파티장을 떠나면서 딱 하나만 기억하는데, 브론스키의 질문에 대답하는 웃는 키티의 행복한 얼굴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대화를 하면서도 얼굴에 생기가 돌아요.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죠.

 

 

 

p287

레빈은 키티에게 버림받지만 올곧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아요. 우리가 살다 보면 레빈처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자신의 몫인데요. 레빈은 자기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조용히 견디는 쪽을 선택합니다. 기계적인 인문을 하는 형과 다르게 현장으로 들어가서 직접 부딫힙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당대 지식인들에게 이론으로 포장하지만 말고 현장에 가서 직접 체험해보라는 얘기를 레빈을 통해서 합니다.

 

 

 

p311

또 이 책에서 제가 아주 좋아하는 한 문장이 있는데 깊이 공감해서 대화 중에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말짱한 영혼은 가짜다.

 

모든 영혼은 말짱할 수가 없어요. 말짱한 영혼은 가짜이지요. 저는 힘들 때 무엇보다 위안이 되는 이 문장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p332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리라는 기필을 거두십시오. 세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오만과 아만을 버려야 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언젠가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얘기해줬습니다. “기필을 버려”라고요. 그걸 버려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p333

호학심사 심지기의.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는 뜻입니다. 비단 책뿐만이 아니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촉수를 모두 열어놓으면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짜증을 낼 것이냐, 또 다른 하나는 비를 맞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은행나무 잎을 보면서 삶의 환희를 느낄 것이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p335

다시 말하지만 다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이 읽었어도 불행한 사람도 많으니까요. “안나 카레니나”에서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기계적인 지식만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니 다독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다시 카프카로 돌아가면 책이 “얼어붙은 내 머리의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읽었다고 얘기하기 위해 읽는 건 의미가 없어요. 단 한권을 읽어도 머릿속의 감수성이 다 깨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독서 후기 ]

올해(2024년)의 목표로 비개발 책을 읽고자 했는데, 그 첫 시작이 “책은 도끼다”이다. 매번 개발서적만 읽다가 정말 오랜만에 비개발 서적을 읽은 것 같은데, 책의 앞 챕터에서는 꽤나 감성적인 내용이 많아서 흠칫하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읽으니 여러 가지 인생의 깨달음과 내가 갖는 사고와 신념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책을 읽는 속도에 관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학습이 아니라 책을 읽었다는 성취감 혹은 완독에 포커싱되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면 책을 다 읽어도 배운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래서 속도를 늦추더라도 단순히 텍스트만 받아들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도 비슷한 기조를 보여주어 내적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먼저 나를 먼저 돌이켜보는 습관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본인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항상 문제는 본인에게 있다라는 생각의 기저가 있기 때문에 그 동안에는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이러한 책의 일부 내용들을 통해 다시 한번 내가 살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이것들 외에도 인생의 교훈 역시 배울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내용 중 하나가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부분이다. 톨스토이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인터뷰입니다”라고 했던 대답은 현실에 충실하지 못했던 모습을 돌이켜보게 했다.

 

 

어렸을 때는 책읽기가 너무 싫어서 논술 학원에 가도 대충 슥 보고 읽은 척만 했는데, 지금에서야 갑자기 책을 찾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면 아마도 이제서야 책을 찾는 건 그 동안 책을 읽지 않아서 몸이 요구하는 건가 싶다. 그래도 덕분에 북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건설적인 취미가 하나 생겼고,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더욱 평온해지는 것 같다. 이후에도 다양한 책들을 꾸준히 읽어 볼 생각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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